김 진 문 논설위원
 玉옥이 옥이라커늘 燔玉번옥만 너겨떠니/이제야 보아하니 眞玉진옥일시 的實적실하다./내게 살송곳 잇던니 뚜러 볼가 하노라(松江 정철) 鐵철이라커늘 攝鐵섭철만 녀겨떠니/이제야 보아하니 正鐵정철일시 的實적실하다./내게 골풀무 잇던니 뇌겨 볼가 하노라.(기생 진옥)

이 시조 2首는 槿花樂府근화악부에 나오는 송강 정철과 평양기생 진옥이 읊은 일종의 肉談詩육담시 또는 酬酌詩수작시다.

육두문자를 써서 서로 술잔을 건네며 화답한 시로 요즈음으로 치면 일종의 연애시다. 번옥은 진짜 옥이 아니라 돌가루를 섞어 만든 모조 玉옥. 眞玉진옥은 진짜 옥을 뜻하면서 기생 진옥을 가리키는 것이다.

살(肉)송곳과 골풀무는 남녀의 성기를 은유하고 있는데, 진옥은 정철이 읊은 시의 뜻을 쉽게 알아차린 것, 아니. 기생 진옥은 오히려 한 술 더 떠서 화창하기를 ‘번옥’은 ‘섭철’로 ‘진옥’에 대해서 ‘정철’로 ‘살송곳’은 ‘골풀무’로 읊었다.

攝鐵섭철은 잡다한 쇳가루가 섞인 쇠를 말한다. 정철이 가짜 섭철인줄 알았는데. 진짜 정철正鐵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正鐵정철은 송강을 말한다. 더구나 나는 마지막 구절을 읽고 조선조 선비들의 풍류세계도 엿보이는 바, 웃음이 쿡쿡 나왔다.

어떤 이는 이 시조를 읽고 猥褻외설스럽다 할지 모르겠으나 두 사람이 화답하는 대귀와 은유, 해학과 기지와 재치가 놀랍고도 뛰어나지 않는가? 시문학의 언어유희에 달관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국문학사에 송강 정철하면 한국 시가문학사를 빛낸 대표의 문인이지만, 한편으로는 정치가로서 조선 당쟁(서인)의 중심 인물이었으며, 기축옥사로 반대파였던 동인으로부터는 악명(?)이 높았다.

기축옥사는 기축년(1589년)에 생긴 정여립의 역모사건으로 정철은 당시 합동수사본부장격의 역할을 맡아 동인들을 철저히 탄핵했다.

3년간 이 사건에 연루되어 죽고, 삭탈관직, 유배와 태장과 국문을 당한 자들이 무려 1천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사망자만 1천여 명 이라는 설도 있다. 이는 앞서 4대 사화에서 화를 당한 사람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고 한다.

이 사건에서 보듯이 정철의 문학성이 아닌 또 다른 인간성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기도하다. 어쨌든 그는 관동별곡과 망양정으로 울진과도 관련이 있는 시인이다.

1585년(선조 18년)정철이 강원도 관찰사로 원주에 부임, 동해안 수려한 풍광(관동팔경)을 읊은 관동별곡은 가사문학의 대표로 일컫는다.

다음은 관동별곡 중 망양정에서 읊은 시 구절로 굽이치는 파도와해돋이의 장관, 그리고 오월 장천의 풍광을 잘 나타내고 있다.

天텬根근을 못내 보와 望망洋양亭뎡의 올은말이, 바다 밧근 하날이니 하날 밧근 므서신고. 갓득 노한 고래, 뉘라셔 놀내관데, 블거니 뿜거니 어즈러이 구는디고. 銀은山산을 내여 六뉵合합의 나리난 듯, 五오月월 長天의 白백雪셜은 므사 일고. 정치인 정철의 일생은 조선의 당쟁에서 비켜가지 못하고 파란만장했다.

그의 시를 보면 참 주옥같은 데 정치는 왜 그렇게 했는지? 그만이 아는가? 글과 삶이 일치해야하는가? 그렇지 아니해도 되는가? 그렇다고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로 미화해야하는가?

오월 어느 날, 산포리의 망양정에 모처럼 올랐다가 정철의 육담시와 관동별곡을 새삼 생각하며 정자 난간에 앉아 문득 망망대해를 바라본다.

망양 앞바다는 까치바리로 까칠하게 일어선다. 둘레의 푸른 해송은 마치 내게도 목송곳이 있다는 듯 가지마다 송화가루를 뿜어내고 있다. 어디선가 뻐꾸기 울음소리, 봄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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