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병 식 주필
근대에 접어들면서 일제의 무력에 강점당해 한 번 망했던 우리나라는 지난 97년 달러 빚을 갚지 못해 또 한 번 망할 뻔했다. 많은 국민기업을 팔아 파산은 면했지만, 만일 위기를 넘기지 못했다면, 국제 금융계의 경제 식민국이 되어 그들의 하수인이 될 뻔했다.

일제로부터 주권을 빼앗겨 숱한 수난을 당한 민족으로서, 또 경제주권을 빼앗겨 버릴 뻔한 IMF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남의 나라 지시를 받으며, 빌붙어 살아야 하는 주제에 자존심이 어디 있으며, 가족이나 국민들의 안위를 지켜 낼 수 있겠는가!

IMF 직전 우리나라는 흥청망청했다. 외국에서 약 30년 동안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를 만큼 열심히 일해 먹고 살만하자, 사회풍조가 나만 잘 먹고 즐기면 된다는, 개인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범람 사회 전반이 부패했다.

떼지어 바다로 계곡으로 놀러 다니는 것도 모자라, 글로벌 시대라며 해외로 나가 물 쓰듯 펑펑 돈을 쓰고 돌아다니는 것이 무슨 자랑처럼 되었고, 심지어 선거 밑에는 정부에서 관변단체 인사 모두를 해외에 가서 놀다오라고 보냈으니, 나라 살림은 거덜 날 수 밖에 없었다.

우리 민족은 조선이 망하고 심각히 망국의 한을 앓은 민족이다. 백성들은 만주로 연해주로 보따리를 싸 뿔뿔이 흩어지고, 심지어 중앙아시아 수십만리 이국땅으로 이주하는 고통을 겪었다.

일천황의 신하가 되어 복속민으로서의 천대를 받아 아부하며 살아야 했고, 일제 말기에는 강제 징병되어 동남아의 먼 이국 땅에서 목숨을 잃었고, 징용되어 뼈빠지게 일하다가 동토의 땅 사할린의 유민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꽃다운 나이의 처녀들은 정신대로 끌려가 왜놈들에게 유린되는 돌이킬 수 없는 굴욕을 당해야 했다.

조선이 왜 망했나? 한마디로 정권이 부패하여 백성들의 신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나고, 혹세에 시달리다 처자식을 버리고 유리걸식하다가 산도적으로 나서는 데도, 나라의 대신들은 자신의 치부를 위해 벼슬을 팔고 샀으며, 대역죄인이라도 그에 상응한 속전만 내면 풀려나는 돈과 권력의 세상이었으니, 어찌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주영 작가는 한말 보부상들의 애환을 담은 장편 소설 ‘객주’를 통해 당시 권력의 부패로 배반과 모략이 만연하여, 이미 국기가 다해 외세에 굴복해 패망해 가지 않을 수 없는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이처럼 조선이 망하는 원인의 근저에는 백성들이 “하늘도 무심하지. 이 놈의 세상 망하지도 않으니...” 라고 한탄하며, 나라를 버린데 있다. 지금도 만일 북한이 쳐 내려올 때, 젊은이들이 모두 숨어버린다면 결과는 뻔하다. 올해의 농사는 망쳤더라도 내년을 기약할 수 있는 희망을 주어야 했으나, 이조 정부는 그러하지 못했다.

요즈음 정부에서 하는 일이 간혹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버리는 경우를 본다. 국민들과 소통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충분하지 않다. 물론 구한말 권력이 부패하여 백성들의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과는 다르겠지만,,,

특히 원자력 사업과 관련해서는 종종 믿지 못할 일을 벌인다. 경주는 지금 수년째 데모중이다. 울진에 원자력 신규 부지를 확보하면서 잦은 식언으로 주민들간 혼란과 갈등을 유발했다. 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부지 선정 때도 그러했다. 유리화 사업과 관련해서도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렸다. 정부에서 울진사람들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은 아닌가!

근자에 고준위 방폐물처리사업과 밀접하게 관련성이 있는 방사능동위원소 제2연구로 부지를 전국을 상대로 공모(공개모집)하면서 또 한 번 국민을 속이고 있다. 그 사업유치가 좋은 것인지 안 좋은 것인지를 당장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을 판단할 지식도 능력도 없고, 따저 볼 마음도 없다.

다만 동위원소연구로는 향후 원자력 발전 폐연료봉을 사용할 것을 전제로 한 사업이며, 아마 고준위 방폐장 유치의 길라잡이 사업이 될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고준위 방폐물은 현대 과학이 만들어 낸 극도의 위험 물질이며, 이 처리시설은 인간사회 최고의 혐오시설인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동위원소연구로 사업 유치는 최고 위험한 혐오시설 인입선을 설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이런 국가적 중대한 사업부지를 공모한다면서 국민과는 전혀 소통하지 않는다. 내부적으로도 공개하지 않고, 언론기관 단 한 곳에도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버젓이 ‘공모’라고 포장하여 나중에 국민들을 속이려 하고 있다.

군의회는 이것이 무엇인지 잘 알려고도 하지 않고, 집행부의 동의안을 토론 한 번 없이 전격 통과시키고, 임광원 군수는 이 사업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으로 알려진다. 이 사업 자체로는 남는 장사가 아니다. 인센티브도 없고, 연구인력 150명 정도가 들어오는데, 부지와 기반시설비 일체를 군비로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중요한 일일수록 투명하게,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적 합의를 토대로 추진해야 한다. ‘국민들을 속이지 말라’는 것이다. 정부는 무슨 일을 하든지, 불특정 다수 국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을 하려면, 먼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이 사업 초단부터 국민들의 눈을 속이고, 비밀리에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하고 있으니...

울진군민들은 당해도 누구에게 왜 어떻게 당하는 지, 이유나 알고 당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편파와 왜곡, 모략과 술수가 판을 쳐 지난번 저준위방폐장 선정 때 처럼 또 온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릴까 걱정이며, 이 정부에 대한 민심이 이반될까 두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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