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품 수집을 시작으로 재기

부도 당시의 재산규모 일궈


작년 불우이웃돕기 선행으로 경북도지사 표창 받아


        기성자원(고물상) 대표 김계웅씨

지난 11월2일 기성자원(폐그물, 폐컴퓨터, 각종 고철`비철 수집, 공장·선박 철거) 대표 김계웅(58세)씨는 울진군청 대회의실에서 임광원군수로부터 경북도지사의 표창을 전수받았다.

김대표는 울진에 정착한 약 10여년전부터 동전모으기를 시작하여 연말 은행 등의 불우이웃돕기 모금함에 남모르게 선행을 해 오다, 수년전부터는 적지 않은 금액을 매년 공동모금회의 성금모금에 참여해 왔다.

그는 울진 사람이 아니다. 지난 97년 IMF전까지만 해도 천안에서 잘 나가던 사람이다. 주유소를 차려 많은 돈을 벌었다. 권력자든 누구든 만나서 교유할 수 있었으며, 천안에서 그가 하고 싶은 일은 못할 게 없었다. 그러나 소위 기업어음 깡을 해주던 그는 IMF가 터지면서 기업들이 도산하면서 쫄당 망했다.

32억원의 부도액을 청산하고 나니, 아파트 전세보증금 정도와 승용차 한 대였다. 아들은 마침 군대에 가 있었고, 딸은 친척집에 맡겼다. 부부 둘이 무작정 집을 떠나 속초에서부터 동해안으로 남하했다.

무얼하며 어떻게 먹고살까 앞날이 막막했다. 영덕 오십천변에 작은 초막을 얻었다. 포장마차와 낚시를 하면서 몇 달을 소일하다가 자신이 너무도 비참해 술을 마시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살을 에이는 듯 차가웠다. 그래 이런 고통을 참아야 죽을 수 있다면, 무엇을 하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는 마음을 돌려먹었다. 노가다 막노동을 하러 다니기도 하고, 생선 장수 닥치는 대로 일만하며, 2년을 버텼다.

영덕 고물상의 소개로 울진 기성에 부도난 고물상을 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처음에 고물쟁이 하려면 이혼하겠다는 부인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나 돈이 된다면 물불을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영덕에 부인을 남겨두고 50만원짜리 트럭 한 대를 구해 올라와 폐지와 고철 수집을 했다. 새벽 3시반이면 일어나 밤 늦게까지 울진 죽변을 돌았다. 뼈빠지게 일했다. 이렇게 2년을 하고 나니 장난이 아니었다. 연간 수입이 억대를 넘었다.

특히 그냥 버리는 폐어망을 공짜로 수집했다. 대형 콘테이너 박스로 약 25대 분 200여톤이 모았을 때 부산에서 무역상이 찾아왔다. 이 나이롱 폐그물은 중국으로 수출되어 다른 제품의 원료로 쓰인다고. Kg당 최고 250원까지 받아 횡재를 했다.

초기 2년 뒤부터는 일이 많아져 4~5명의 직원들을 두고 있다. 마침 정부의 연안 배 감척 사업이 시작되어 입찰을 보아 현재까지 경주 포항 영덕 울진 강릉 등에서 약 700여척을 해체하면서 중소기업으로 부상했다.

이제는 영덕에 건물도 소유하게 되었고, 주택도 지었다. 500여평의 땅을 구입하여 수집된 스텐을 가공하여 판매할 공장을 지을 계획을 추진중이다.

그가 이번에 상을 받게 된 불우이웃돕기 선행의 발단은 폐품과 폐철 수집을 위해 마을을 돌면서 어려운 이웃을 많이 보게 되면서 부터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들과 동류의식을 느끼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의 아버지는 황해도 출신으로 육군대위였으나, 핏덩이였던 그를 남기고 전사했고, 어머니마져 재가했다. 먹고 살기가 어려웠던 외할머니 손에 남겨져 커면서 청년시절 방황도 많이 했다. 그야말로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던 것이다.

그의 어린시절을 돌아보면, 의지할 데 없는 고아와 같았다고 회고 한다. 27살에 부인을 만나 서른이 넘어서야 마음을 잡았다. 택시기사, 버스기사 등 온갖 일을 하여 착실히 돈을 모았고, 39살에 주유소를 차려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당시 그가 천안에서 가졌던 땅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면 아마 갑부가 되었을 것이라고.

요즈음 젊은이들은 육체 노동을 싫어합니다. 그 곳에 돈도 있고, 인생의 보람도 있다는 걸 모릅니다. 내가 살아본 결과 인생 별거 아닙니다. 얼마나 치열하게 사느냐가 중요하고 인생의 승패가 그기에 있는 걸요.

이제는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며 살아갈까 합니다. 쓸만큼 돈도 벌었고 가정도 화목합니다. 아들 하나 딸 하나 모두 잘 커 대학을 졸업하고, 아들은 자영업을, 딸은 3~4개 외국어에 능통해 인천국제공항에서 안내방송을 하고 있다며, 뿌듯해 하는 눈치였다.


                                                        /전병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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