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해바라기가 피는 계절, 올해도 내가 좋아하는 꽃, 해바라기를 밭 둘레에 수십 포기 심었다. 해바라기는 조금만 정성을 들이면 쑥쑥 잘 자란다. 큰 바퀴 모양 꽃이 올 같은 폭염에도 아랑곳 않고, 그보다 더한 황금빛으로 빛나는 모양새도 일품이다. 하지만 내가 해바라기를 심고 가꾸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마음의 어떤 보상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작
장마를 핑계로 며칠 밭에 나가지 않았다. 비가 그치고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 한낮 밭을 찾았다. 토마토는 곁순이 나와 한 뼘이나 자랐고, 오이는 덩굴손들이 지주대의 그물 끈들을 잡지 못해 바람에 건들거렸다. 밭가에 심은 호박은 엉뚱한 데로 자기 영역을 차지하여 뻗어나고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감자, 마늘, 양파를 거둔 빈 밭과 파밭은 그야말로 풀밭이다.
『요즘 뭐하고 지내세요? 그냥 집에서 쉬고 있지. 들에도 더러 나가고, 농사지으세요? 하기야 밭떼기에 채소 따위를 조금 심어 놓았으니 농사할 수 있겠지. 내가 농사짓는다? 머리가 하얗게 되었네요. 그렇지 백수지, 그야말로 백수지, 하하하!』 가끔 길거리에서 나를 알아보고, 서로 안부를 주고받는 말이다. 필자는 공직에서 퇴직한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퇴직한
오월 어느 날, 경북 최북단 울진 고포항을 찾았다. 구길인 7번 국도에서 바라보는 쪽빛 동해 바다! 가슴이 확 트이고 수평선이 가물거린다. 고포 마을로 내려가는 초입 어디선가 아까씨 향 내음과 산비둘기 울음소리가 봄을 재촉하고 있다. 바다는 오랜만에 평화롭다. 방파제 가까이 다가가면 바다는 속을 훤히 드러낸다. 검붉은 미역 줄기들이 짬(미역바위)마다 마치
며칠 전 볼일이 있어 한 가게에 들렀다가 청소년 선거연령 문제로 설왕설래하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직 고등학생인 가 (“너희”의 울진사투리) 들이 사회와 정치에 대해 뭘 알아?』 하는 것이 그들의 결론인 듯했다. 듣고 있다가 쓴웃음이 나왔다. 그들이 요즘 청소년들을 자기들 기준에서 너무 어리게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식
울진의 봄 날씨는 꽤나 변덕스럽다. 대체로 3월에는 바람이 많이 불고, 때로는 진갈눈까지 내리고 기온조차 새초롬하다. 다행히 씨감자를 놓는 날, 봄볕은 따사로웠다. 이제 20여일쯤 지나면 감자는 세상 밖으로 연초록 잎을 피워 올릴게다. 감자는 다른 작물보다 밑거름이 많이 필요하고, 감자 꽃이 필 무렵에는 물을 넉넉히 대야만 굵은 감자를 거둘 수 있다고 한다
우리 고전 가운데 하나로 짧은 이야기들을 모은 책 『청구야담』과 『명심보감』에는 조선조 선비 홍기섭(1781~1866)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홍기섭이 젊었을 때 말할 수 없이 가난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 계집종이 기뻐 날뛰며 공에게 돈 일곱 냥을 바치며 말하였다.『이것이 솥 안에 있었습니다. 이 돈이면 쌀이 몇 가마고 땔나무가 몇 바리입니까? 이 돈은
1980년대 만화를 좀 봤다는 사람이 그 유명한 『공포의 외인구단』을 모른다면 간첩(?)일 것이다. 그 대표적 주인공, 까치와 엄지가 만화책도, 대본소도, 만화방도, 웹툰도 아닌 고즈넉한 시골 골목에 나타났다. 한국화도, 서양화도 아닌 만화 장면의 주인공들이 시골 벽화에 등장한 것이다. 그들의 등장으로 시골 골목은 이야기로 풍성해졌다. 메마르고 강팔랐던 벽
지역문화원장은 그 지역의 전통문화나 정신문화를 사회적으로 대표하는 사람이다. 울진문화원 연혁에 따르면 1955년 3월, 향인 임대득 씨 등이 울진군청 공보실에서 미국과 정부의 시책 홍보 영상을 만든 것을 울진 최초의 문화원 기능으로 보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뒤 1976년 8월, 독립운동유공자인 산해 전영경 선생 등이 뜻을 모아 울진문화원을 설립, 초
울진 구산리 대풍헌과 울릉도, 독도를 주제로 한 동화가 나와 관심을 끈다. 동화작가 김일광이 쓴 『바위에 새긴 이름 삼봉이』로, 그 배경이 기성 구산의 대풍헌이다. 동화의 주인공은 수토사(守土使)로 부임한 장한상이며, 대대로 도사공 노릇을 한 구산 동네의 삼봉이네 가족들이 그 등장인물이다. 1694년 조선 최초의 수토사인 장한상은 울릉도와 부속섬인 독도를
울진신문 창간 26주년을 축하한다. 울진신문 창간위원으로서 당시 전병식 국장과 함께 발기인 참여인사 발굴 등을 위해 관내외에 동분서주했던 일과 신문편집 기획, 창간축시와 창간사설을 썼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신문사 임직원 모두 다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라 미숙보다는 창간의욕이 넘쳤다. 왜냐 하면 경북에서도 그것도 울진이라는 여러 환경조건을 극복, 언론사상 드
이번 대선은 전쟁이었다. 사생의 결단의 싸움터 같았다. 이제는 전쟁에서 평화로, 불통이 소통으로, 불화가 화합으로, 네 편, 내편이 아니라 우리로, 독재가 민주로(최근 뉴욕타임즈의 ‘한국은 변화를 거부하고 독재자의 딸을 선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마치 박근혜 정권, 5년을 예단하는 것 같아 한편으로 찜찜하기도 하다.)증오가 사랑으로,
논설위원 김진문필자는 소나타를 10년 넘게 타고 있는데 요즘 고장이 꽤나 잦다. 몇 년 전에는 주행 중 엔진이 타버려 새로 갈았고, 가끔은 부주의로 밧데리가 나가 긴급 출동을 호출해야 했다. 요 며칠 전에는 바퀴에 이상이 생겨 정비소에서 제동장치를 고쳤다. 둘레 지인들은 이제 10년 이상 탔으니 폐차하라고 은근히 부추기나 아직도 괜찮은데 뭘 바꾸어? 하지만
논설위원 김진문산길을 가는데 뭔가 차바퀴에 뿌직하는 느낌에 차를 세웠다. 개구리인가 싶었는데 사마귀였다. 찻길 동물사고(roadkill)가 어디 한 둘이겠는가 마는 어쨌든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런데 저 앞에 몇 놈이 진(陣)을 치고 있다. 가을 햇살에 아스팔트 바닥이 따뜻해서 나온 게지. 아니면 사냥을 나왔든가. 모두다 배를 아스팔트 바닥에 딱 대고,
논설위원 김진문아침 일찍 발품을 팔아 오른 낙동정맥 봉우리! 800고지다. 안일왕산성 부근, 벼랑 끝! 아스라한 대왕 소나무(일명 안일왕산소나무)를 보는 순간! 내 몸이 뒤틀린다. 둘레의 풍광과 함께 아득하다! 아, 저건 단순한 소나무가 아니라 하늘을 꿈꾸는 용송(龍松)이다. 아니 신령스러운 영혼이 담긴 신목(神木)이다.산신령이 따로 없겠다! 낙동정맥의 푸
바람도 없는 땡볕아래그늘이 그늘을 보듬는다.나무들도 제마다 그늘을 만들어산새들을 품어준다.산들의 큰 그늘 넉넉한 풍경이 된다.산 너머에서 허겁지겁 달려온 구름 녹색 들판에 흐르는그늘이 된다.흘러가서 오지 않은 시간이제 그늘로 어딘가에 누군가의 그늘이 되어 있을까?저 미루나무 잎!햇볕에 반짝이는 사랑 노래를 보라!그 사랑노래는 비로소 그늘이 되어 아늑한 숲이
논설위원 김진문비 온 후 연호는 더욱 생기발랄하다. 연잎에 알알이 맺힌 수정보석들, 폭염에도 녹지 않는다. 수양버들은 휘휘 늘어졌다. 오랜만에 연호정의 기와 끝 하늘이 세수한 듯 파랗다. 연호둘레가 녹색정원으로 한 철을 녹음방초하며 지나고 있다. 연못생태의 보고라 할 수 있는 연호는 그야말로 온갖 수서곤충과 조류, 식물들이 번성을 구가하고 있다. 언제 새끼
논설위원 김진문예로부터 울진에서 내륙으로 들어가는 세 갈래 큰길은 흥부의 십이령, 온정의 주령, 그리고 매화에서 시작되어 영양으로 넘어가는 고초령으로 알려져 있다. 해발 700여미터의 일명 『높을재』라고 하는 고초령(高草嶺)! 나는 이 높을재를 달리 이름하고 싶다. 그래서 高草嶺이 아닌 민초들의 온갖 애환-괴로움과 어려움-이 깃든 苦楚嶺으로. 그럼에도 이제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농촌에서는 닭서리, 콩서리, 복숭아, 참외, 수박서리가 재미삼아 있었다. 서리란 청소년들이 모여서 과수원의 과일이나 논밭의 곡식 등을 주인 몰래 조금씩 따거나 베어다가 나누어 먹으며 노는 놀이문화이다. 그 당시에는 들키더라도 주인이 대개 용서하고 넘어 갔다. 농촌에서 자란 50대 이상 중장년층에게는 이 서리 문화가 아련한 추억으
논설위원 김진문 최근 제188회 군의회 임시회에서 장시원 의원과 백정례 의원의 5분 발언을 두고 이례적으로 집행부에서 해명서를 내는 등 의회와 집행부가 삐걱대고 있다.장 의원의 임시회 5분 발언에 따르면,『2월 14일 특별지원금 사업계획안에 대해 집행부와 의원 간담회 협의 때, 집행부에서 올린 19개 사업에 대해서 시급성이 없는 사업과 본예산으로 할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