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 떠난 당신은 늘 푸른 나무/ 순수의 열정으로 빛나던 투혼 / 절망 속에 온몸 던진 희생과 사랑/ 아낌없이 다 내준 거룩한 사명/ 가슴마다 강물되어 길이 흐르리/ 먼 길 떠난 당신은 늘 푸른 나무’이 시는 서울소방학교 추모탑에 새겨진 순직 소방관을 위한 추모시로서, 공모에서 당선된 나의 시다. ‘소방혼消防魂&rsquo
올림픽공원에는 한성백제박물관이 있다. 그 주위로는 조형물이 잘 조성되어 있고 박물관에서 동쪽으로 오래된 나무 몇 그루가 있다. 나무 그늘에는 벤치가 세 개 놓여 있다. 나는 주말마다 그 나무 그늘 벤치에서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몇 번 가서 미리 써온 원고를 놓고 공부를 하면서 나무그늘의 고마움을 알았다. 처음에는 그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몰랐다. 하루
생활용품의 수명은 어떻게 환산해야할까. 함부로 버리는 습관이 환경 파괴범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고 사는 것 아닐까. 오랜만에 신발장을 정리하다 보니 신지 않는 신발들이 비좁은 신발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버리기에는 아까운 운동화 한 켤레가 나를 망설이게 했다. 구입한 지 십여 년 된 것 같은데 밑창 부분의 접착이 떨어졌을 뿐 아직 멀쩡했다. 수선을 하면 더 신
봄이 왔다. 햇볕사이로 실바람이 살랑거린다. 내 사무실 앞에는 몇 그루의 나무가 서 있다. 주변의 벚나무는 움이 트는데 한 나무는 감감무소식이다. 지난겨울에 말라 죽었는가 싶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시원치 않아 직원에게 이 나무 죽은 것이 아니냐고 물은 적이 있다. 갈색 빛이 도는 거친 나무껍질 때문인지 메말라 보였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조그만 것이 꼬
베네치아는 내가 여행 다닌 도시 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곳이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물위에 도시가 건설되어 인간의 무한한 힘을 보았기 때문이다. 6세기 롬바르디아인들을 피해 온 난민들과 토착어민들이 아드리아 해의 석호 위에 세운 도시였다. 수백만 떡갈나무 말뚝을 바다 속 점토층에 깊숙이 박고, 진흙을 채워 건물을 올린 신비의 세계이다. 불굴의 의지와 상상
하멜, 그대는 영웅이요.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당신이 잠자는 나라 조선을 세상에 알렸기 때문이요. 동인도 회사 소속 스페르베르호에 승선, 스물 셋인 그대는 화물 감독으로 약재, 녹피, 목향, 설탕을 싣고 해와 달, 별과 바람에 의지하여 1653년 대만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항해 중 태풍을 만났소. 닷새 동안 파도와 사투를 벌이다 제주 근해에서 암초에 부딪혀 돛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이웃하고 있는 나라와 국경의 개념이 없는 듯하다. 유럽이라는 큰 틀이 하나의 국가이고, 프랑스나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 폴란드는 하나의 도시라는 생각이 다. 차량은 아무런 제지 없이 국경을 넘나들었다. 우리나라와 같이 국경을 지키는 군인도 없다. 남북한이 총부리를 겨누며 한반도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그들이 부러울 뿐이다. 이런 유럽
일본에 여행했을 때 일이다. 오사카 간사이공항에 도착하여 수속을 밟을 때 나이 지긋한 분이 열심히 안내하고 있었다. 교토에서 하루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향했다.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는 순간 안내원이 달려와 가방을 들어주었다. 아침 식사할 때도 주방 여성이 연신 인사하기 바쁜 모습이었다. 내가 여행을 그렇게 많이 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
나는 어릴 적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 할머니께서 말씀하시길 할아버지는 규범적이고 검소하며 부지런하셨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높은 벼슬자리에 오른 것도 아니고, 학문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지만 매사에 열심이셨다. 그런 인품을 잘 아는 가암 선생이 묘비문을 지었다. “公의 심성이 순수醇粹하여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모나지 않기 때문에
올해는 일찍 꽃을 피웠다. 기온이 갑자기 높아진 날씨 탓인가. 겨우내 홀로 다져온 뿌리로부터의 고독을 견디지 못했나, 꽃샘바람이 깨울 틈을 주지 않았다. 개나리가 길가에 늘어져 노란 웃음으로 봄을 만끽하고 있다. 계절 따라 피는 꽃들은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봄에 피는 매화, 여름에 피는 백일홍, 가을에 피는 국화, 나는 겨울에 피는 인동초를 좋아
서울에서 고향인 울진으로 내려 갈 때면 나는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한다. 서울에서 울진까지는 4시간 남짓 소요된다. 대관령을 넘어 해안선을 따라 한참 달리다. 울진에 들어서면 고운 자태의 백일홍이 반겨준다. 배롱나무라고도 부르는 백일홍을 보면 방금 튀겨낸 팝콘 같기도 하다. 길 위에서 오랜 지루함은 백일홍을 보는 순간 사르르 녹아내린다. 울진의 상징인 백일홍은
별을 본 지 오래되었다. 가끔 별을 보기 위해 목을 쭉 빼고 밤하늘을 쳐다보지만, 듬성듬성 몇 개의 별이 흐릿하게 보일 뿐이다. 몇 번을 쳐다보았으나 초롱한 별은 볼 수 없었다. 서울 하늘의 흙먼지 때문이리라.빛나는 별을 본 것이 40여 년 전인 것 같다. 고향을 떠난 지가 벌써 그렇게 되었나 보다. 내 고향 울진 바닷가는 광활한 수평선이 있어서 끝없는 미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본다. 편견 때문일까. 나는 살아오면서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으로 일을 그르친 경험을 많이 했다. 다양성을 놓쳤기 때문이다. 한 가지를 보고 열 가지를 알 수 있지만, 한 가지 때문에 열 가지를 놓치는 수도 있다. 나는 겨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계절 중에서 겨울은 유난히 힘들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어릴 때,
고등학교 1학년 때 갑자기 등창이 났습니다. 점점 커지더니 주먹만큼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내 등을 보시더니 옛날에는 등창이 나서 죽은 사람도 있었다면서 혀를 찾습니다. 죽은 사람도 있다는 말에 겁이 났습니다. 얼음판같이 번들번들한 등짝에 아버지는 치질 고치는 약물을 주사기에 넣어 빨간 등창을 푹 찔렀습니다. 얼마나 아팠던지 펄쩍펄쩍 뛰다가 비명을 지르며 뒷
TV를 켜면 아름다운 여성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젊은이들은 연기하는 배우를 보며 사랑을 키우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만을 앞세워 이상형을 그리는 외모 지상주의자들에게 나는 이런 질문을 해본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적인 것일까요, 외적인 것일까요. 며칠 전 본부회의에 참석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전철을 탔다. 동대문역사박물관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
모차르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책에서 거리에서 하다못해 초콜릿에도 그의 얼굴이 박혀있다. 찰스부르크 뿐만 아니라, 빈, 프라하 같은 도시의 관광청들은 세계적인 작곡가를 칭송하며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인다. 음악가 모차르트를 낳은 축제의 도시답게 찰스부르크는 아름답다. 이 도시에는 모차르트광장, 레지텐츠, 대성당, 축제극장, 호엔찰츠부르크성, 게트라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어떻게 지내느냐고 묻는다. 정년퇴임 후 사는 모습이 각양각색이라 도대체 저 사람은 어떻게 살까 궁금한 모양이다. 정년을 한 뒤,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집안에 틀어박혀 글을 썼다. 계획했던 시집도 마무리 지어야 했고 산문집도 매듭을 지어야 했다. 내 딴에는 인생을 알차게 마무리 하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왠지 우울한 기분이 들
나는 술을 그렇게 좋아 하지 않는다. 꼭 필요한 술자리에서도 소주 석 잔이면 족하다. 때로 취기가 오르면 술을 좀 더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몸에서 받지 않는다. 술을 마시면 혼자서 술독을 비운 것처럼 얼굴이 붉어진다. 아마도 술은 내 체질이 아닌 모양이다. 언젠가 병원에서 진찰 순서를 기다리다 책꽂이에 있는 책 한권을 펼쳤다. “술 잘 먹
도회지 사람들의 귀농귀촌은 충분한 기간을 가지고 생각해야 한다. 퇴직과 함께 시골살이를 위해 준비하고 고민하는 지인들을 많이 본다. 새로운 정착 방법을 생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퇴직을 앞두고 귀농귀촌 체험이 있었다. 연수생 44명은 지난해 늦가을 서울인재개발원을 출발하여 충남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에 도착했다. 귀농인 최영수씨가 운영하는 다정다반에
나는 목욕탕 내에 있는 이발소를 자주 이용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목욕탕에 가는 데 목욕하기 전에 이발하는 것이 편하다. 내가 지금 머리를 깎는 곳은 5년째 단골로 가는 이발소이다. 이발소 벽면에는 기능장 1급 자격증이 걸려 있다. 인정받은 이발 기술은 내 마음에 꼭 맞게 머리를 깎아 준다. 이발 요금은 9,000원, 머리 깎는 시간은 20여 분이 소요